목일신문화재단에 방문해 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본 문화재단은 '목일신 문학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사명을 가지고 문화와 예술, 아동문학 발전을 위한 문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회 일반의 이익에 공여하고자 합니다.
100여 년 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 마흔셋 젊은 나이로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오남매를 남겨 두고 생을 마감해야 했던 한 아버지와 우리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열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로해야 했던 한 소년을 생각해 봅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열 손톱과 열 발톱이 모두 빠지고 엉덩이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혹독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혔으나 일제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출소 후 기독청년회와 광명학원을 설립했습니다.
노동자와 여성들을 위해 야학교를 세우고 한글과 산술 등을 가르치셨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어린 오남매를 남겨 두고 끝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아들인 목일신은 아버지의 죽음 10년 후, 삐라를 직접 만들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동하다 전주형무소에 갇혔습니다. 감옥 속에서도 어린 목일신은 감추어 둔 몽당연필로 동시를 썼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왜 죽었는지, 소년은 왜 동시를 썼는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슴이 시리도록 서려 있습니다.
하늘같은 아버지가 고문 후유증으로 죽는 것을 보았던 열다섯살 소년은, 10년 후에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따라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이 시위대의 맨 앞에 섰습니다. 10년 전 아버지처럼 삐라를 뿌리면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동하다 감옥에 갇히고 결국 퇴학을 당한 것입니다.
일제의 모진 고문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생생히 보고도 어떤 아들이 감히 두려움을 떨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똑같은 방법으로 일제에 맞서다 감옥에 갇히고 아버지는 순국하고 아들은 퇴학을 당하는 가족사는 일제강점기에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 목일신과 그의 아버지가 걸어갔던 길을 우리 모두는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목일신 선생님은 어두운 시대에도 낮에는 꽃으로 피어나 웃고, 밤에는 별이 되어 빛나기를 바랬습니다. 선생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아이들이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우리 모두가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목일신문화재단은 선생님이 살아오신 그 길을 등대 삼아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겠습니다.
본 문화재단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사랑과 응원으로 함께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목일신문화재단 이사장 양 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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